스크랩드 프린세스 - 또 다른 이야기 #2

 이 이야기는 스인, 그러니까 피스메이커 시즈가 각성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전재하에 진행되는 평행세계의 이야기입니다.

 

 

 

 < 전언 >

 

 [...그런 의미에서 집에 한 번 들려주면 고맙겠구나.]

 

 앞의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마지막에 적혀 있던 저 내용만이 레오폴드 스콜프스의 뇌리에 남겨졌을 뿐이다.

 

 "왜 하필이면 지금..."

 

 기사에 대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지금, 하필이면 지금 오라고 한다. 이 소식을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가보실건가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위니아 체스터가 말을 걸어왔다. 그제야 현실감을 되찾은 레오폴드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요. 가지 않을 겁니다. 지금 가버리면 제가 겨우 붙잡은 정의가 사라져버릴 것 같아요."

 

 위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주님께 인사드리러 가볼까요?"

 "결정 하신겁니까?"

 

 레오폴드의 놀라워하는 얼굴을 보며 위니아는 작게 웃었다.

 

 "네. 만나야 할 사람도 있구요."

 "자, 그럼 어서 떠나죠."

 

 언제나 행동을 우선시하는 레오폴드 답게 벌써 이것저것 챙기기 시작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위니아는 창문 너머로 펼쳐진 태양을 보며 생각했다.

 

 '파시피카, 너도 어디선가 저 태양을 보고 있겠지?'

 

 자신의 소중한 친구의 미래를 위해 기도한 위니아가 레오폴드의 행동에 동참한다.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게 된다. 파시피카는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산적과의 싸움에는 일절 신경쓰지 않고 그저 지고 있는 태양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크웰 언니."

 "응?"

 

 샤논이 막 마지막 산적을 검집으로 기절시키고 돌아오는 사이 파시피카가 라크웰에게 물었다.

 

 "폐위공주란 도대체 뭘까?"

 "음... 글쎄?"

 

 궁금했다. 스스로가 도대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도 죽이지 못해 안달인지 말이다. 하지만 정작 대답해줄 사람은 근처에 아무도 없었다. 라크웰에게 물어보았던 것도 그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한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다.

 그 사이 라크웰의 무릎을 배고 곤히 자고 있던 스인이 일어났는지 뒤척였다.

 

 "우웅. 파시피카... 많이 먹어..."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파시피카는 순간 스인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어머, 스인이 꿈을 꾸나봐. 거기서도 파시피카가 먹보인가보네?"

 "라크웰 언니!!"

 

 거기다 이쯤 되면 괜히 아무것도 아닌 거 가지고 놀리는 라크웰 때문이라도 파시피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샤논은 자신의 앞에 둥둥 떠 있는 제피리스를 보며 무표정하니 말했다.

 

 "왜 또 나타났지? 분명 스인은 이제 가족이다."

 "오늘은 시즈에 대해서가 아니다. 이 앞의 마을은 위험하다. 단지, 그걸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샤논과 제피리스 사이의 감정의 골은 여전히 깊었다. 그건 스인이 시즈로의 각성을 거부하고 꼬마아가씨 스인으로 남아버린 지금에 이르러선 어찌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하지만 둘 다 서로의 관계를 단칼에 잘라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쩐지 둘의 사이가 다투고 난 뒤의 연인들 처럼 느껴져 라크웰은 작게 웃어버렸다.

 

 "오빠! 샤논 오빠! 아, 제피리스도 왔네? 음, 아무튼! 오빠! 나 배고파! 빨리 밥 차려줘!"

 "넌, 배 속에 무슨 괴수라도 키우고 있는 거냐."

 "나 같은 미녀는 제 때 먹어줘야 한다구."

 "네네, 알아모시겠습니다."

 

 제피리스를 지나쳐 오며 고개를 끄덕이는 샤논. 파시피카는 그런 오빠를 보내고 뒤에 남은 제피리스에게 손짓했다.

 

 "제피리스도 같이 먹자."

 "...괜찮다."

 

 급히 이상공간으로 사라지는 제피리스의 얼굴이 어쩐지 살짝 붉어진 기분이었지만, 파시피카는 그냥 모른 척 해주었다. 어차피 그거야 당사자들의 일이지 않는가.

 단지 지난 15년간 독점해온 샤논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 뿐이다. 지금에 와서야 그 소유권(?)의 절반은 스인에게 넘어가버렸지만.

 그런데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었다. 제피리스도 그렇고, 스인도 그렇고. 그들의 본질이 어떠하든 막상 직접 보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았다. 겁이 난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마치 가까운 친인을 대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사람.

 지금이야 스인은 그녀의 동생이라 인정하고 있었지만.

 

 "뭐, 고민해봐야 나만 손해지."

 

 어쩐지 누구랑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제피리스의 말처럼 마을의 분위기는 어딘가 터지기 직전의 폭탄과 비슷했다. 샤논은 애써 진정하는 듯 했어도, 상당부분 동요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것은 라크웰 역시 마찬가지였다.

 

 "들었어? 폐위공주가 살아 있데."

 "으, 무서운 일이야."

 

 주변에서 소근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에 따라 파시피카의 몸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빨리 잡았으면 좋겠어."

 "그러게 말이야."

 

 "걱정 하지 마라. 넌, 내가 지킨다."

 

 잔뜩 움츠러든 파시피카가 걱정이 되었던지 샤논이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 몸의 떨림이 조금씩 사라져간다.

 

 "고마워."

 "응?"

 "...능글맞게 어딜 만지는 거야!"

 

 괜히 부끄러운 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애초에 샤논이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를 바란 것 자체가 무리였긴 했다. 그래도 하다못해 어느 정도 반응은 있을 줄 알았는데, 뭐, 응? 이건 무슨 목석을 앞에 두고 고백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파시피카는 이 목석 오라버니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다.

 

 "파시피카 나쁘다. 샤논 막 때린다. 샤논 아프다."

 

 거기다 더욱 가관인 건, 가만히 있던 스인까지 합세를 해버린 모습이었다.

 하지만 1차 매치는 그리 오래가지 않아 끝나야만 했다. 최강 적이었던 샤논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뻗어 파시피카를 자신의 망토로 가렸다. 그녀의 옆에 있던 스인 역시 함께 가려졌다.

 

 "어머? 좋은 때를 방해한 건가요?"

 "...피스메이커."

 

 스테아였다. 예전 스인이 각성하게 되었을 때 곁에 있던 피스메이커.

 금발의 여인은 마치 오랜만에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얼굴 가득 홍조를 띠며 샤논에게 다가왔다.

 

 "검은 뽑지 않으시는 게 좋을거에요. 오늘은 그저 당부의 말을 전하고자 왔으니까요."

 "...무슨 말이지?"

 

 율법의 힘은 더 이상 그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거기다 중계점들을 풀어낸다 하여도 배신자 시즈가 함께하고 있는 이상 저들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아틀라티 타입인 시즈의 지배력이 스테아 자신보다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스테아는 지금 상당히 모험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기아트 제국으로 가세요."

 "우리가 어째서 네 말을 따라야 하지?"

 

 이미 이런 반응은 예상하고 있었다. 스테아는 모호한 미소를 지으며 이상공간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말의 파급효과는 꽤나 컸다. 어차피 라인번 왕국에서는 더 이상 돌아다닐 수 없게 되었다. 제아무리 저들이 스인 - 시즈를 신경쓰고 있어서 무력충돌을 자제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인간들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손을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다. 되려 그로 인해 어떠한 치밀한 계략이 앞에 펼쳐져 있을지가 더욱 걱정이었다.

 그렇다 해서 스인을 버리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스인은 어디까지나 카슬 남매의 당당한 식구였다.

 

 "샤논 오빠."

 "...가자. 어차피 여기서는 더 이상 있지 못해."

 "하지만 기아트 제국이라고 딱 꼬집어 얘기했다는 건, 함정이 있다는 얘기잖아?"

 

 라크웰의 걱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샤논 역시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선택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현 세계를 양분하는 절대적 제국. 라인번과 기아트. 어차피 가야 할 거라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곳이 숨기에는 좋았다.

 

 "그래도 가야 한다면, 가야지."

 

 샤논은 짐짓 고개를 들어 정오의 햇살이 비치고 있는 저 너머의 교회를 바라보았다.

 

 과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마우젤이란 신의 생각은 무엇일까...

by MirGadia | 2008/05/10 18:34 | 【 패러디 】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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